친애하는 추기경님,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먼저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조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팬데믹 이후 많은 국제적 긴장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주사가 필요했고, 지난 리스본에서의 날들은 살아가는 것과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의 기쁨을 표출하는 진정한 축제였습니다.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하느님께서 계속 머무신다는 희망의 축제였으며, 하느님께서 직접 영양분을 주시고 견고하게 만들어 주시는, 가치가 있는 행사였기 때문에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으나, 그만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이 경험을 통해 여러분은 다가오는 국제 행사를 위해 일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특히 '평소'에도 청소년 사목을 동반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내년에 있을 청소년 희년과 3년 뒤 서울에서 있을 세계청년대회 생각하면, 평소 성당에 다니지 않는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저는 '고개를 떨구고', 지평을 바라보지 못하고, 큰 꿈을 제쳐두고 슬픔과 삶의 악에 얽매인 소년 소녀들을 생각합니다. 아시아는 젊은 대륙이자 생명력이 넘치는 대륙이지만, 특히 대도시의 많은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인간관계나 관심사도 거의 없이 자기 속에 위축되어 사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가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와 서울에서 개최되는 행사는 전 세계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예수님이 희망이고, 너의 희망이고, 우리의 희망이고, 모두의 희망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좋은 기회입니다!
여러분이 희년과 서울 대회라는 큰 행사를 위해 일하면서도 평범한 길, 즉 일상에서 젊은이들이 걸어가는 길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발걸음, 적은 숫자, 단순한 말과 몸짓, 공동체에서의 전례와 기도의 순간, 일상적인 결정 등의 과정과 사목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수고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경험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이야기한 일상의 거룩함입니다. 제 글을 광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쁨의 찬가인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읽으십시오. 슬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슬픔입니다.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자양분이자 그리스도인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거울 앞으로 가십시오. 조금 웃음이 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일상적인 청소년 사목 할동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요소를 상기하고 싶습니다. 우선, 젊은이들이 "하느님은 사랑이다", "그리스도는 너를 구원하신다", "그분은 살아 계신다", "성령은 생명을 주신다"와 같은 근본적인 확신을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과 더불어 '성모님은 어머니이시기에 너를 사랑하신다'는 또 다른 확신도 가져야 합니다. 지치지 않고 선포해야 할 네 가지, 다섯 가지 간단한 진리입니다(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12-133항 참조). 젊은이들은 특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부정적인 소식에 영향을 받지만, 그런 것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며 어떤 악보다 강하다는 확신을 어둡게 해서는 안 됩니다. 뉴스나 전쟁을 떠벌리지 말고 이것을 생각합시다. 젊은이들은 이것을 느낍니다. 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모든 것은 살아 있고, 그분의 손에 달려 있으며, 그분만이 세상의 운명과 우리 삶의 과정을 알고 계십니다. 젊은이들에게 기도와 성체성사와 화해, 공동체 모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 성인들의 증거를 통해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경험하는 젊은이들이야말로 바로 이 선포-증거의 전달자가 됩니다.
또 다른 필수 요소는 영적 식별입니다(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278~298항 참조). 식별이란 사제, 수도자, 교리교사, 동반자, 다른 젊은이들을 동반하는 젊은이 등 사목자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기술입니다. 즉흥적으로 할 수 없고, 깊이 있게 경험하고 실천해야 하는 예술입니다. 한 젊은이가 식별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보물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신앙의 여정과 자신의 성소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현명한 안내자는 수많은 실수와 어리석음, 당황과 '마비'의 순간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자유를 빼앗지 않고 동반하는 안내자 말입니다. 식별에 관해서는 제가 일련의 교리교육도 했으니 가서 식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하는 것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저는 식별의 세 특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시노드적, 개별적, 진리 지향. 식별은 시노드적이고, 개별적이며, 진리를 지향합니다.
시노드적. 오늘날 개인주의가 만연하여 각자가 자신의 길을 가고, 각자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각자 자신만의 가치와 진리를 정립합니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것-싫어하는 것'이라는 기준을 따를 것입니다. 이것은 고약한 개인주의입니다. 대신 교회는 식별을 단행할 때 혼자가 아니라 함께 길을 걷도록 신앙 안에서 형제자매들 곁에 우리를 배치하고, 그렇게 우리의 내적 성숙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식별은 시노드적입니다.
동시에 식별은 개별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표준화되고 동질화되어 있지만, 젊은이들은 한 명 한 명 개성을 존중받아야 합니다. 각자는 독특하고 반복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각자의 나이와 인간적, 영적 성숙도에 맞는 조언을 듣고, 이해하고, 제공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식별은 개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날 저는 한 본당에서 약 60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는데, 청소년들이 던지는 질문들, 즉 탐구, 주님을 향한 개방성, 의혹 등에 대한 질문들이 저를 흥겹게 했습니다. 경청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식별은 진실을 지향합니다. 이말은 불평처럼 여겨질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개인 프로필이 자주 변조되거나 가짜로 만들어지는, 신원이 변조되는 등 가짜 뉴스에 오염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식별은 젊은이들을 위한 진실의 여정, 즉 인위적인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자신 앞에서, 타인 앞에서,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들이 화장을 하는 것을 볼 때 웃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워야 하고, 그래서 화장을 하는 것이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얼마나 자주 영혼의 메이크업을 하는가요! 이것을 조심하세요. 다른 사람 앞에서,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젊은이들을 계속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쪽짜리 경청'이나 '겉치레'에 그치지 않는 진정한 경청 말입니다. 젊은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결정했거나 자신들의 필요에 부합하지도 않는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젊은이들이 책임감을 갖고 대화에 참여하고, 활동을 계획하고, 결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 삶의 적극적인 부분이고 온전한 일원임을 느끼게 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젊은이들 스스로가 동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젊은이들과 함께 젊은이들을 위한 여러분의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용기를 갖고 나가며,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기쁜 소식을 모두에게 전하십시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기쁨과 위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온 마음으로 여러분을 강복하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