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감응하는 사랑의 증거"
- 29일 국립고궁박물관, '예비문화유산 발굴 공모전' 시상식 개최
- 향후 '정식 예비문화유산' 지정 절차 남아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의 붉은 흙먼지 속에서 청소년들의 상처를 싸매고 평화를 연주했던 故 이태석 요한 신부님의 숨결이, 이제 대한민국이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고 기억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의 자리로 한발짝 다가갔다.
오늘(29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바로 국가유산청이 주최한 '예비문화유산 발굴 공모전' 시상식에서, 「이태석 신부 남수단 활동 관련 자료 및 물품」이 '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날 시상식에는 백광현 마르첼로 관구장 신부를 대리하여 이세바 신부(이태석신부기념관 관장)가 상을 받고, 유물의 가치를 알리는 감동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여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예비문화유산' 지정의 의미: 5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국가적 가치
본래 대한민국의 국가유산(구 문화재) 등록 제도는 제작되거나 형성된 지 50년이 지난 유물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 때문에 근현대사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산들이 50년이 채 되기 전에 훼손되거나 멸실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잦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근 새롭게 도입된 제도가 바로 '예비문화유산' 제도이다. 건설·제작·형성된 지 50년이 지나지 않았더라도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 장래에 국가유산으로 등록될 잠재력이 높은 유산들을 국가가 선제적으로 발굴하여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공모전에서 이태석 신부의 유물이 우수상을 받았다는 것은, 종교계의 뜻깊은 유품이라는 차원을 넘어, 국가가 앞장서서 보존하고 후대에 전승해야 할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핵심적이고 자랑스러운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매우 뜻깊은 진일보라 하겠다.
기적의 변곡점, 그리고 진정한 친구
이날 시상식 무대에 오른 이세바 신부는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감응하는 사랑의 증거"라는 주제로 이태석 신부님의 삶과 유물이 지닌 가치를 깊이 있게 풀어냈다.
이 신부는 발표의 서두에서, 한국 천주교회와 대한민국이 제국주의의 침탈과 전쟁의 고난을 겪으며 외부 원조에 기대던 '받는 나라'였음을, 그리고 이태석 신부도 그 원조를 통해 성장기를 보낸 수혜자였음을 상기시켰다. 이어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 유물들은, 그 처절한 고난을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상의 가장 아픈 곳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베푸는 나라, 베푸는 교회’로 도약했음을 증명하는 눈부신 분기점의 아이콘"이라며 유물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했다.
세 곳의 공간에 나뉘어 숨 쉬는 헌신의 발자취
이태석 신부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남수단 톤즈에 남긴 진료 기구, 브라스밴드 악보, 교육계획과 기록물 등은 단순한 과거의 물건이 아니다. 현재 이 유물들은 이태석 신부의 삶을 입체적으로 증명하는 세 곳의 핵심 공간에 나뉘어 체계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살레시오 영성의 실현을 상징하는 친필 기록물들은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역사관(이태석관)'에, 가난한 이웃을 향한 연민의 뿌리인 생전 유품들은 부산시 서구 생가 터에 마련된 '이태석신부기념관'에, 그리고 생명 존중의 의술이 담긴 아카이브는 모교인 '인제대학교'에 나뉘어 보관 중이다. 살레시오회 내 '이태석위원회'의 총괄 아래 세 주체가 긴밀히 협력하는 이 유기적인 보존 시스템은 유물의 훼손을 막고 대중적 감동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인프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평화의 유산, '감응하는 사랑'
이세바 신부는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진료소에서 하루 300명을 진료하던 낡은 청진기, 분노에 찬 소년병들의 손에서 총을 내려놓게 만든 악보들을 언급하며, 이 유물들이 "파편화된 구호가 아닌, 의료와 교육, 예술을 결합하여 분쟁 지역을 자립 가능한 희망의 공동체로 바꾸어낸 기적의 설계도"라고 강조했다.
이 유물들의 독보적인 가치는 돈 보스코의 예방교육이 지향하는 '감응하는 사랑(Amorevolezza)'을 완벽하게 증명한다는 데 있다.
"이태석 신부님은 두 문화를 잇는 다리 위에서 구호물자를 내려주는 단순한 시혜자가 아니라, 가난한 아이들 삶의 한가운데로 직접 걸어 들어가 진정한 친구가 되셨습니다"라고 강조한 그는, "사랑을 베푸는 것을 넘어, 버림받고 상처 입은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깊이 사랑받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셨고, 마침내 그들로부터 감동스러운 우정의 응답을 이끌어내셨습니다"라고 역설했다.
정식 '예비문화유산' 지정을 향한 희망과 2027 세계청년대회(WYD)
끝으로 이세바 신부는 이 유물들이 과거의 영광을 기리는 박제된 물건이 아니라, 다가올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에서 수십만 명의 세계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증명하고 자랑할 핵심적인 영성 콘텐츠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특정 종교와 국가를 넘어선 '1% 나눔의 정신'이 계속해서 피어나 세상 널리 퍼지기를 호소하며 발표는 마무리되었다.
이번 공모전 우수상 수상은 이태석 신부의 유물이 지닌 인류애적 가치는 물론이고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을 투영하고 있음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뜻깊은 성과이다. 이 의미 있는 유산이 온전한 법적 보호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내년에 있을 국가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식 예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중요한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한 사람의 살레시안이 척박한 땅에 심은 감응하는 사랑의 씨앗이 국가의 미래문화유산으로 확정되고 사해동포적인 나눔의 모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제 온 살레시오 가족이 마음을 모아 정식 지정을 향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