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해진 묵주가 증언하는 삶, '햇수'가 아닌 '한껏' 채워낸 신앙의 밀도
한 사람의 생애를 가장 정직하게 증언하는 물건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유언장도 아니고… 청첩장도 아니고… 제 마음에 오래 남는 삶을 정직하게 증언하는 것은, 아주 다 닳고 닳아 반질반질해진 묵주라든지… 그리고 표지가 헤어져서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기도서 같은 것들입니다.
사실 그것들은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수십 년 동안, 새벽마다 켜졌던 불빛을 기억합니다. 자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흘렸던 눈물을 기억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홀로 무릎 꿇었던 그 땀을 기억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묵주를, 그런 기도서를 아흔네 해 동안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한 분이신… 저의 대부님이기도 하신, 정요한 아버님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죽음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장수를 누린 노인으로 한껏 살다가 숨을 거두고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갔다.” 오늘 이 구절에서 “한껏”이라는 한 마디에 아주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오래’ 살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껏’ 살았다고 말합니다. 길이가 아니라, 밀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세상은 사람의 생애를 햇수로 셉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세시는 것은 ‘몇 해를 살았느냐’가 아니라, ‘그 세월을 무엇으로 채웠느냐’라는 사실은 이 자리에서 더욱 명확해집니다. 아흔네 해, 그 안에는 전쟁도 있었고, 가난도 있었고, 병상도 있었을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근심의 밤도 있었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확인하는 것이 명징합니다. 대부님은 그 모든 세월을 ‘신앙’으로 채우셨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 끝내 놓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제가 증언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의심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심을 품고서도 다시 성당 문을 여는 발걸음, 그 발걸음이 있으니까 말이죠. 그 발걸음을 아흔네 해 동안 멈추지 않으셨던 그것이 이분의 생애였습니다.
삶의 뒷모습으로 물려준 유산, "자녀는 아버지의 무릎을 기억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가정 교회(Ecclesia domestica)’라고 불렀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느님을 처음으로 알려주는 첫 신앙의 교사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전해지는 방식을 보면 대개 말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말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신앙의 전달은 삶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것일 겁니다.
식탁 앞에서 먼저 성호를 그으셨던 손, 아무리 고단해도 주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챙겨 입던 가장 깨끗한 옷, 자식이 잘못했을 때 야단치기 전에 먼저 기도하러 들어가셨던 뒷모습… 자녀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무릎은 평생 기억합니다.
남아있는 유족이 오늘 이 자리에 이 깊은 슬픔 가운데서도 신앙 안에 굳건히 서 있다는 그 사실은, 아버님께서 남기신 가장 큰 유산이자 가장 큰 증거라고 감히 말씀 올릴 수 있겠습니다.
재산은 나누면 줄어들지만, 신앙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평신도로, 또 사제로, 성직자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신 유족이야말로 아버님이 남기신 살아있는 유언장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화려함을 좇지 않고 묵묵히 십자가를 졌던 참된 그리스도인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대여, 그대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
사랑은 본능적으로 영원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 요구가 결코 헛되지 않다고 대답하는 자리입니다. 제 대부님께서는 아주 오랜 세월 본당의 총회장으로 주임 신부님을 도우셨고, 작은 신앙 공동체를 이끌어 형제자매들의 신앙을 돌보셨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해 본 사람들은 압니다. 그 자리는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내어 맞는 자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앞에서는 사제의 짐을 나누어지고, 뒤에서는 교우들의 서러운… 서운함을 들어야 하는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감당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신자들에게 이렇게 고백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는 저는 주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총회장이라는 직분도 그러합니다. 교우들을 위해서는 그런 그 앞에서는 자리이지만 교우들 곁에서도 교우들 아래로 내려가는 자리라는 사실 말입니다.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신앙과 양심의 두 다리를 딛고 서는 사람. 오늘 우리가 떠나보내는 제 대부님이야말로 그 말에 살아있는 해석이셨습니다. 세상은 앞장선 사람이 기억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뒤에서 받쳐준 사람들을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뒷자리를 정확히 보고 계십니다.
슬픔은 사랑의 다른 이름… 이별 예식을 넘어 기도의 대화로
요한 묵시록은 이렇게 전합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모든 이들은 행복하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갑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새벽 미사로 향하던 발걸음도, 반 모임을 준비하며 끓이던 차 한 잔도, 냉담한 교우의 집 앞에서 망설이다 끝내 두드렸던 그 손길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지금 그분을 따라 하느님 앞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 대부님, 그래서 뒤에서 드는 십자가를 지실 겁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님, 이 대부 바로 다음에 곧바로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이 질문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입니다. 슬픔이 가장 깊은 순간에, 주님께서는 위로의 말씀 대신 질문을 건네신 것입니다.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 안에 맺힌 눈물은 신앙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 사랑이 진짜였다는 증거입니다. 슬픔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프지도 않았을 듯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눈물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 눈물 곁에 함께 앉아 계십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아있는 이들에게 가장 아프고 후회가 되는 것은 아마도, 아마도 못다 한 말들일 겁니다.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시간, 마지막에 조금 더 오래 손을 잡아드리지 못한 아쉬움,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하고 끝내 한 번도 하지 못한 말들…
하지만 죽음은 우리와 그분 사이의 대화를 끊지 못합니다. 다만 그 대화의 언어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제 그 언어는 기도라는 형식을 띱니다. 이렇게 우리의 전례는 이별 예식을 초월해서 파견 예식으로 옮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분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사도 바오로의 고백이 오늘, 제 대부님의 고백이었음을 압니다.
주님, 영원한 안식을 정요한에게 주소서. 영원한 빛을 정요한에게 비추소서. 세상을 떠난 정요한이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