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현 부제의 마음이 담긴 귀국 인사
로마 유학을 하고 있는 정일현 부제가 사제품(6월 27일 오후 2시, 살레시오 관구관)을 앞두고 귀국하여 한국 살레시오 가족들 앞에서 진솔하고 감동적인 귀국 소회를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레오 14세 교황, 그리고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평화 미사까지 세계적인 이목이 쏠린 자리에서 제대 봉사를 했던 그는, 세상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감춰진 사제의 '거룩한 고독'을 깊이 묵상하며 참된 살레시안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다음은 살레시오 가족들에게 기도를 청하는 정일현 부제의 귀국 인사 전문이다.
"어제 아침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서 한국어로 복음을 봉독하고 강론을 하고 있는 이 순간이, 아직은 꿈만 같고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부제 복사를 서는 날이면 밤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저의 서툰 발음으로 인해 다른 분들에게 분심이 생길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리웠던 고국에 돌아와 형제들 앞에 서니 마음이 참 따뜻하고 좋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하지 말라시며, 오직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만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로마 유학 생활 중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특별한 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로마에서 부제로 지내며 아주 특별한 순간들을 마주했습니다. 시종직으로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주례하시는 미사에 참례했고, 부제로서 레오 14세 교황님 곁에서 세 번, 그리고 출국 직전인 지난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 미사'에 제대 봉사자로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고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화려한 현장에서, 저는 문득 그분들의 삶이 참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을 온 세상이 쳐다보고, 단 한 순간도 카메라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 자리가 얼마나 숨 막히고 고독할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수많은 군중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무거운 자리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은 그 화려한 자리를 부러워하며 박수를 보내지만, 정작 왕관을 쓴 이들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자신만의 ‘골방’에서 무거운 책임감과 고독을 견디어 내고 계시리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 요한 보스코가 사제품을 앞두었을 때, 맘마 마르게리따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미사를 드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곧 고통받기 시작한다는 뜻이란다.'
이제 곧 사제품을 받을 저에게 이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매일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자리가 많은 이의 시선과 존경을 받는 화려한 자리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양들의 아픔을 짊어지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홀로 눈물 흘려야 하는 사제의 거룩한 고독과 고통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여기 계신 선배 회원들의 삶이 왜 그토록 존경스러운지, 그리고 제가 마주했던 교황님들의 삶과 가톨릭 교회의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삶을 다시금 우러러보게 됩니다. 세상의 박수 소리가 아니라, 때로는 오해와 고독 속에서도 오직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한 분만을 바라보며 평생 그 묵직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오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이 부족한 부제가 세상의 시선이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거룩한 고독과 고통을 기꺼이 껴안고 양들과 연대하는 참된 살레시안이 될 수 있도록 기도를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