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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수녀회 초대 관구장 임호련 수녀 선종
살레시오수녀회 제공
12일, 살레시오수녀회는 임호련 데레지나 수녀(향년 81)가 이날 새벽에 서울 신길동 수녀원에서 선종했다고 발표했다. 전날 저녁에도 동료 수녀들과 함께하는 오락에 참여하고 식사까지 평소보다 풍족하게 할 정도로 비교적 건강을 잘 유지하는 편이었는데, 새벽 1시경, 갑작스럽게 심근경색과 심정지가 발생하여 하느님의 깊은 품속에 영원히 안긴 것이다.
데레지나 수녀는 1942년 4월 15일, 일본 오카야마현에서 재일교포 2세로 출생했다. 일본에서 살레시오수녀회에 입회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 8월 5일, 로마에서 첫서원을 했다. 이태 뒤인 1966년, “나는 한국말을 잘 모릅니다.”라는 한 문장을 암기한 채 한국 선교사로 파견되어 왔다. 훗날 가톨릭신문과 인터뷰에서 임 수녀는 “격변기라 할 수 있는 모국에서 생활하면서 비로서 완전한 한국인이 될 수 있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우리말이 서툰 것으로 인해 숱한 이야깃거리를 남기기도 했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광주 살레시오여고의 교장을, 이어 1985년부터 1989년까지 4년 동안 한국 살레시오수녀회(셋별관구)의 첫 관구장을 지냈다. 관구장의 중책을 벋어나자마자 바로 1990년, “선교사는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나이 많던 아브라함도 ‘떠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즉시 응답하지 않았습니까. 저 역시 주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생각에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아프리카 케냐로 선교를 떠났다. 하지만, 현지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고 건강이 나빠져 한국으로 되돌아왔고, 1992년부터 수련장을 담당하며 풍성한 경험과 높은 인덕으로 후배 수도자들의 첫걸음을 잘 인도했다.
늘 미소를 머금으며 온유하고 친절하여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던 임 수녀는 항상 기도하는 수도자의 전형이었다. 기력이 딸려 더 이상 사목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러서는 늘 감실의 예수님을 조배하며 하느님과 깊은 일치로 후배 수녀들의 왕성한 사목활동에 영적인 힘을 보탰다.
그렇게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제주 강정마을 평화의섬 천주교 연대, 상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천주교 연대, 4대강 반대, 검찰개혁 촉구 등과 같은 사회정의와 환경을 보호하는 활동에는 적극적으로 이름을 올려 현실 상황을 깊게 고민하고 참여하는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임호련 수녀의 장례미사는 3월 14일(목) 오전 6시 30분, 살레시오수녀회 관구관 성당(서울 신길동)에서 있겠고, 장지는 전남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이며 하관예절은 오후 1시로 예정되어 있다. (문의: 02-841-8957)
그리스도 따름의 60년 수도생활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수행하며 돈 보스코의 가족 안에서, 특히 살레시오수녀회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임호련 데레지나 수녀가 도움이신 마리아의 따뜻한 환영과 인도를 받으며 돈 보스코 천상정원의 영원한 행복속으로 안기시길 기도한다.
임호련 데레지나 수녀의 약력
- 1942년 4월 15일 출생(일본)
- 1964년 8월 5일 첫서원(로마)
- 1966년 한국 선교사 입국
- 1970년 8월 5일 종신서원
- 1975 - 1983 살레시오여고 교장
- 1985 - 1989 살레시오수녀회 초대 관구장
- 1990 - 1993 아프리카 케냐 선교사
- 1992 - 1996 수련장
- 2006 - 2013 제주 신성 공동체 원장
- 2024년 3월 12일 선종(서울, 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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