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보스코와 거의 동시대 사람인 헨리 뉴먼 추기경에게 교회박사라는 칭호가 수여됩니다. 바티칸 공보실에 따르면, 오늘 레오 14세는 시복시성 심의부 소속 추기경과 주교들의 전체에서 이렇게 결정한 것을 승인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로 가득 찬 삶의 모범을 보여준 영국 출신 추기경인 존 헨리 뉴먼은 2019년에 시성되었으며, 현대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19세기 교회와 에큐메니즘에 깊은 영향을 미친 영적·인간적 여정의 주인공이자 신앙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와 '마음과 마음의 대화'로 이어지는 일상적인 대화임을 보여주는 성찰과 저술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그림자와 이미지에서 벗어나 진리 속으로
”자비로운 빛이여 저를 인도하소서
어둠 속에서 저를 인도하소서.
밤은 어둡고 집은 멀리 있나이다.
저를 인도하소서….
당신의 권능은 항상 저를 축복하셨으니,
오늘도 저를 인도하시어 습지와 황야를 지나게 하소서.
밤이 사라지고 새벽이 제 길에 미소 지을 떄까지…”
1801년에 태어난 존 헨리 뉴먼이 32세 때 이탈리아를 길게 여행한 후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가슴 아픈 기도를 마음속으로 되뇌습니다. 그는 8년 동안 성공회 사제로 활동했는데, 말과 글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당시 그의 교회에서 이미 가장 뛰어난 지성인 중 한 명으로 손꼽혔습니다.
1832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의 내적 탐구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존 헨리 뉴먼은 하느님의 깊이를 알고자 하는 갈망, 그에게 진리의 빛과도 같은 하느님의 “부드러운 빛”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 교회의 진정한 본질, 초기 교회 전통에 대한 진리, 첫 번째 교부들이 아직 분열되지 않은 교회에게 말하던 시절의 전통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신앙이 빛을 발하는 중심지이자 미래의 가톨릭 성인이 이끌었던 옥스포드 운동은 그의 신념을 점점 더 보편교회로 인도하는 길이 됩니다. 1845년 그는 교리 발전에 관한 논고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추구해온 그 빛을 낳은 영적 여정을 정리합니다. 즉,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나온 공번된 교회이며, 순교자와 고대 교부들의 교회로, 나무처럼 역사 속에서 자라나고 발전해온 교회라는 확신입니다. 그 후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를 요청했으며, 1845년 10월 8일에 가톨릭으로 개종합니다. 나중에 그 순간을 회상하며. “그것은 나에게 폭풍우 속의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내 행복은 끊임없이 이어졌다.”라 회고하였습니다.
성 필리포 네리에 매료되어
이미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신학자이자 사상가인 그가 1846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프로파간다 피데 신학원의 신학생으로 들어갑니다. “여기 있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꿈처럼 평화롭고, 안전하며, 행복합니다. 마치 항상 여기에 속해 있었던 것처럼요.”라고 당시 감정을 기록합니다. 1847년 5월 30일, 그는 가톨릭 사제로 서품됩니다. 이 기간 동안 뉴먼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로마에 의해 ‘입양된’ 또 다른 위대한 성인 필리포 네리에 매료되어 그가 설립한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합니다. 비오 9세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격려하자, 존 헨리는 즉시 따르며 영국에서 오라토리오회를 설립했고, 성인의 아름다운 단순함과 친화력을 본받아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당시, 1850년대의 영국은 가톨릭에 대한 대대적인 적대행위가 이어지고 있었고, 그가 고향에서 가톨릭을 뿌리내리기 위해 시작한 여러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는 시련 속에서도 이 유쾌한 분위기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적대적인 개신교 세력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가톨릭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빛나는 대중강연과 저술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그의 모습에서 샤블레 지방에서 목숨을 걸고 교회 옹호 활동을 펼친, 두 세기를 앞선 다른 교회학자,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1879년, 레오 13세 교황은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했고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구름이 영원히 사라졌다.” 그는 1890년 8월 11일 선종할 때까지 평소와 같은 열정으로 사도직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무덤에는 이름과 89년 인생을 요약하는 Ex umbris et imaginibus in Veritatem(그림자와 이미지에서 벗어나 진리 속으로)라는 짧은 문구만 새겨졌습니다.
“Cor ad cor loquitur”(마음이 마음에게 말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0년 그를 시복하며, 깊은 기도의 사람으로 “사제직의 인간적인 비전을 신실한 돌봄으로 실천한 사람”이라고 회상했습니다. “병자와 가난한 자를 방문하고, 버림받은 자를 위로하며, 감옥에 있는 자들을 돌보는 것”이 그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2019년, 뉴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교황은 회칙 Dilexit nos(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에서 영국 추기경이 자신의 모토로 “Cor ad cor loquitur”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모든 논쟁을 넘어 주님은 마음으로 우리 마음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논리는 그에게, 위대한 사상가로서, 자신과 주님과의 가장 깊은 만남의 장소가 독서나 성찰이 아니라, 살아계시고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기도하는 대화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뉴먼은 성체성사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했으며, 이는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에게 진정한 평화를 불어넣는 힘이었습니다.”(26)
삶의 가르침과 영성, 특히 마음을 다루는 것에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많이 닮은 또 한 분, 돈 보스코의 시대를 함께 살았던 교회박사가 탄생하는 것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