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선오 신부 / 사진. 백준식 수사
신금득 마리아 어머님은 생전에 3남 2녀를 두셨고 그 중 5번째이신 강재원 사비오 수사님께서 살레시오회의 형제이신 연고로 어머님의 소천 날, 이 귀한 자리에 몇마디 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마리아 어머님은 가난한 집에 시집오셨고 5남매를 키우기 위해서 몸소 검소한 삶을 사셨습니다. 넉넉치 않은 살림살이이지만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늘 노력하셨고 소박한 식재료로 ‘진수성찬’을 만들어내셨던 요리의 대가셨답니다. 수사님께서는 어머님의 손을 거치면 어떤 식재료도 고급져지고, 소박한 식재료로도 늘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주려고 애쓰시던 사랑이 넘치던 분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또한 어머님께서는 매사에 낙관적이시고 무한긍정의 사고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아프시던 아버님의 9년간의 투병생활을 돌보실 때도 그러했고 본인이 요양원에 계시던 마지막 15년간의 시간에서도 그러셨습니다. 늘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 안에 있다고 믿는 분이셨습니다.
심지어는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도 간병하는 주변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시기 위해서 농담을 하실 정도로 낙관적이시고 다른 분들을 배려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건강하실 때는 목소리도 좋으셨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노래도 곧잘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수사님도 노래를 잘 부르는데, 어머님을 닮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끝까지 자녀들을 배려하는 태도로서 병원비이며 장례비까지도 어머님께서 미리 다 준비해 놓고 하느님께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며 수사님께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수사님(막내)이 수도원에 들어 가려고 할 때, 당시 신자가 아니시던 어머님께서는 큰 고민에 빠지셨다고 합니다.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서 의논하고 각종 부적과 정성으로 막내아들의 ‘탈선’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끝내 고집을 부리던 막내가 수도원으로 들어가자 이제 그 아들을 위해서 6개월 뒤에 성당으로 향하시는 따뜻한 어머니셨습니다. 역시 아들을 이기는 어머니는 없나봅니다. 그 후에 어머님의 사랑의 선택을 시작으로 다른 가족들이 점점 신자가 되었갔습니다. 시작은 수사님이셨지만 복음은 어머님을 통해서 가족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렇게 어머님께서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얻으시고 예수님의 어머니처럼 ‘가족을 돌보는 묵묵한 어머니’로 살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과 할머님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을 어떻게 말로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 8부 축제 때에 돌아가셨습니다. 부활 8부 축제는 부활대축일을 8일 동안 반복하는 부활축제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부활날’에 하느님께로 돌아가실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삶을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위로의 선물’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부활 대축일 다음날 돌아가시고 어제 장례식을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처럼요.
향년 96, 소풍의 삶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어머님. 그동안 하셨던 모든 노고와 고통을 내려놓으시고, 주님 천국의 정원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실 어머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고 어머님께서 먼저 가신 그곳. 저희도 열심히 살고 나중에 그곳에서 어머님을 만나 뵐 때까지 저희를 위해서 빌어 주시길 빕니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하느님의 정원에 먼저 들어가심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