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불러 드렸습니다. 울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강론을 아들이 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떨리는 일이지만, 아버지의 가시는 길을 흥겹고 설레게 해드리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 노래를 불러드렸습니다.
먼저 아버지가 하느님의 품으로 떠나시기 전, 3주 동안 어머니와 함께 간병할 수 있도록 섭리를 베풀어주신 하느님과, 이를 허락해 주신 살레시오회 관구장 신부님, 그리고 제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교구 구로3동성당 주임신부이신 백승준 신부님과 공동체에 감사드립니다.
간병을 하는 동안 어머니께서 낮에 아버지를 보살펴 드리고, 저는 아버지 옆에서 밤을 새면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임종의 순간을 대비했습니다. 통증이나 기타 아버지 신상의 불편함 때문에 잠을 이루시지 못하는 병고와, 이를 해소해드리기 위해 제 딴에 노력을 했지만, 아버지께서 어떠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죽음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가시는 아버지를 밤새 지키고 케어하는 일은 마음은 너무나 바쁘고 몸은 지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아 계시는 아버지와 제 옆에서 주무시는 어머니 또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는 제가 한 공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사실만도 너무나 행복했고 일분일초가 소중하고 귀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또 아버지를 하느님 품으로 떠나보내시는 어머니를 위해 무엇인가 도움을 드릴 수 있었음이 참 행복했습니다. 주임신부님께 안 울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는데,....
이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합니다. 아버지는 관계를 맺는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쾌한 말과 행동으로 따뜻한 정과 추억을 남기는 참 따뜻하고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장례식장을 찾아오셨던 아버지의 많은 지인들께서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들, 아버지께 받은 다듯한 관심과 사랑을 회상하며 지으시는 미소를 보면서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열정적인 교회의 일군이셨습니다. 이 청전동 성당의 건립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고, 어느날 집에 차가 없어진 거예요. 승용차를 팔고 트럭을 사가지고 사목회 임원들, 아저씨들과 폐지를 줍고 페기름을 수거하여 비누를 만들어 팔며 청전동 성당의 건립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하셨던 교회의 일꾼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또한 아버지는 가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신 분이셨습니다. 가정을 위해 정직하게 늘 열심히 일하셨고, 가족의 영육간 건강과 평화를 위해 열정적으로 기도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이제 이런 아버지께서 우리 곁에 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으며 마음이 아프지만, 아버지께서 하느님의 품에서 더 이상 통증도 없이 근심도 없이 영원한 행복과 평화를 누리고 계시리라 믿고 희망합나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사랑, 또 교회와 가족을 위한 헌신, 열정적인 기도의 삶은 천상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가르키는 이정표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이제 고인이 되신 강덕헌 베다 아버님의 넋을 기리면서, 불가능하겠지만, 항상 영광을 향한 이정표를 따라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미사를 통해서 필요한 은혜를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