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향년 73세·서원 45년의
아름다운 축성생활 마치고 하느님 품으로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광주관구는 소속 노동아 피델리스 수녀가 2026년 9월 10일, 향년 73세를 일기로 지상의 여정을 마치고 하느님의 품에 안겨 천상 돈보스코의정원에서 영광을 누리시게 됐다는 승리의 소식을 전했다.
40대부터 시작된 20여 년의 기나긴 투병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로 여기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사랑과 봉헌의 삶을 살아낸 눈부신 45년의 축성 생활이었다.
젊은이들을 성소로 이끌던 기쁨의 사도
1952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피델리스 수녀는 1977년 수도회에 입회하여 1981년 첫서원을 했다. 이후 약 20년 동안 본당 선교 사도직에 헌신하며 예수성심을 닮은 살레시오 가족 특유의 명랑함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신자들의 곁을 다정하게 지켰다. 특히 젊은이들을 향한 애정이 남달랐던 수녀님은 만나는 청년마다 성소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모임을 마련하며, 자신이 누리는 수도 성소의 벅찬 기쁨으로 그들을 초대하는 열정적인 사도였다.
이후에도 자신의 소임이 주어지는 곳이라면 수련원 주방 보조, 역사관, 제의제작실, 성가롤로병원 '행복한 집' 사랑의 식당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각 사도직에서 묵묵히 헌신했다.
시한부 선고 앞에서도 화해와 감사를 택한 20년의 투병
피델리스 수녀님의 삶에 찾아온 십자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처음 말기 난소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수녀님은 원망하거나 절망하는 대신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며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찾아가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 건강을 회복해 다시 사도직에 복귀하는 기적을 체험했지만, 난소암을 시작으로 대장암, 위암, 그리고 2018년 재발한 피부암이 폐로 전이되기까지 무려 20년이 넘게 모진 병마와 싸우는 증거의 삶을 이어갔다. 수녀님은 병마의 십자가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하루를 하느님께서 덤으로 주신 소중한 생명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며 낙천적이고 감사하는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성령께서 이끄신 손끝, "할 수 있는 날까지 봉헌하겠습니다"
2018년 암이 재발하여 광주 본원에서 휴양하는 동안에도 수녀님의 헌신은 멈추지 않았다. 약 4년 동안 본원 성당의 전례 꽃꽂이를 도맡아 봉사했다. 정식으로 꽃꽂이를 배운 것은 아녔지만, "할 수 있는 날까지 봉헌하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제대 앞을 지켰다. 특별한 계획 없이 그저 꽃을 바라보며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손을 움직였다는 수녀님의 꽃꽂이는,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해 활짝 피어나는 그녀의 영혼처럼 늘 성스럽고 아름다웠다.
"기쁘게 봉헌하고 싶은데 너무 힘들어…" 십자가에 기댄 마지막 고백
피부암이 폐까지 전이되어 호스피스 병동에서 맞이한 마지막 며칠. 체중이 28kg까지 줄어들어 쇠약해진 몸으로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수녀님의 마음은 온통 하느님과 공동체를 향해 있었다.
마지막 면회를 온 관구장 수녀에게 "공동체가 모두 그립다, 보고 싶다. 좋은 이야기 해 주셔서 고맙다"라며 애틋한 사랑을 전한 피델리스 수녀님. 자신의 끔찍한 고통마저도 십자가 위의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기쁘게 봉헌하고자 했던 수녀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다.
자신의 인간적인 나약함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주님께 내어드린 이 솔직하고도 숭고한 고백은, 수녀님이 평생 얼마나 치열하게 십자가를 끌어안고 참된 수도자로 살고자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고 있다.
오랜 병고의 무거운 십자가를 내려놓고, 이제는 고통도 눈물도 없는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 노동아 피델리스 수녀. 그녀가 청년들에게 나누어주던 맑은 웃음과 제대 앞에 바쳤던 아름다운 꽃향기, 그리고 끝까지 다 바쳐 봉헌하고자 했던 숭고한 삶의 향기는 온 살레시오 가족의 마음속에 지지 않는 꽃으로 영원히 피어있을 것이다.
"주님, 노동아 피델리스 수녀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