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4일 오전,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관구관. 살레시오회(SDB), 살레시오 수녀회(FMA), 까리따스수녀회(SCG)의 관구장들과 평의원, 원장 등 50여 명의 수도회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2월 26일 방한하여 20일간의 밀도 높은 일정을 소화해 온 은퇴 총장 파스콸 차베스 신부(Fr. Pascual Chávez)의 한국에서 마지막 공식 일정의 강의를 경청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방문은 그가 총장으로 재임하던 지난 2010년 이후 무려 15년 만의 방한이었다. 강산이 한 번하고도 반이 변할 시간이 흘렀지만, 단상에 선 차베스 신부에게서 세월의 무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15년 전보다 더욱 강렬해진 눈빛과 식지 않는 열정으로, 전 세계 살레시오 가족들에게 돈 보스코의 살아있는 카리스마와 총장에 대한 일치와 사랑을 전파하는 그의 모습은 참석자들에게 깊은 경이로움과 사랑의 떨림을 안겨주었다.
‘일’이 아닌 ‘신비’를 살다: 피정에서 전한 울림
오늘의 강의에 앞서, 차베스 신부는 어제(13일)까지 살레시오 수녀회와 살레시오회원들에게, 두 차례에 걸친 피정 강의를 통해 참가자들을 깊은 침묵과 묵상으로 초대했다. 피정의 주제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 사랑의 증거’. 그는 “우리의 사명 수행과 복음적 권고의 실천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신비 체험’에 뿌리를 둔 것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는 피정 기간 내내 “살레시오 사명을 수행한다는 것은 활동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 안에서 신비를 살아가는 것”이라며, 활동과 기도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영성의 본질을 꿰뚫었다. 특히 매일 봉헌된 미사 강론은 참가자들에게 잊지 못할 영적 양식이 되었다. 온 세상에 익히 알려진 성서 분야 전문가로서 그는 그날의 복음을 피정의 주제와 절묘하게 연결하며, 참가자들이 스쳐지나가는 신앙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참사랑, 즉 그 신비를 맛보고 깊이 침잠할 수 있도록 이끄는 ‘탁월한 영혼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신비 체험에서 우러나온 ‘권위의 봉사’
이러한 영적 토대 위에서 14일 진행된 한국 살레시오 가족 수도회 장상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시노드적 사명을 위하여: 통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요청되는 새 포도주로서 권위의 봉사’라는 주제로 다시 한 번 강단에 선 그는, 피정에서 강조했던 ‘사랑의 신비’가 공동체 운영 안에서 어떻게 ‘권위’로 표현되어야 하는지를 역설했다.
“권위는 지배가 아닌, 십자가 위에서 꽃피는 사랑의 섬김”이라고 강조한 그는, 한국 살레시오 가족 수도회 지도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앞서 걷고, 낙오자가 없도록 뒤에서 보살피며, 형제들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기 위해 한가운데서 걷는 동반의 리더십"을 주문했다.
“먼저, 사랑받도록 노력하십시오.”는 돈 보스코가 돈 루아에게 전했던 당부다. 이는 차베스 신부가 피정 기간 강조했던 ‘신비 체험’이 구체적인 팁으로써, 삶의 자리에서 ‘형제애’를 발휘해야 하는 살레시안의 영성 그 자체였고, 살레시오 정신의 핵심인 Amorevolezza를 한 마디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귀중한 가르침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랑이 먼저 있었고, 이를 느끼고 깨달은 우리 사람이 하느님의 그 사랑에 응답하는 것, 이게 바로 신비체험의 요체라고 설명하며, 이게 바로 돈 보스코가 말하는 Amorevolezza의 참 뜻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Nec laudibus nec timore(찬사에 흔들리지 말고, 두려움에 굴하지 마라)”
오늘 강의 말미, 차베스 신부는 한국의 살레시오 가족 단체 수도회 지도자들에게 “찬사에 흔들리지 말고, 두려움에 굴하지 마라”는 라틴어 격언으로 마지막 축복을 건넸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신비가’만이 가질 수 있는 담대함으로 주님의 양떼를 돌보라는 은퇴 총장의 간곡한 당부였다.
지난 20일간, 차베스 신부는 한국 살레시오 가족들에게 ‘활동하는 신비가’의 모범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총장 은퇴 이후 12년이라는 시간을, 자신의 뒤를 잇는 총장들의 요청에 따라 온전히 헌신하며, 넘치는 열정으로 돈 보스코의 카리스마를 증거하고 설파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는 그는, 이제 이틀간의 짧은 휴식을 취한 뒤 16일 로마로 잠시 귀환했다가, 다시 그를 찾는 세상을 향해 바쁜 일정을 이어갈 것이다.
이렇게 감동적이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직관으로 우리의 눈을 밝혀주는 돈 보스코의 아홉 번째 후계자를 15년 만에 다시 맞이한 한국의 살레시오 가족들은 진심으로 큰 기쁨과 감사를 느끼고 있다. 파스칼 차베스 신부님이 앞으로도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의 모든 살레시오 가족들에게 이러한 통찰력과 사랑을 전하며, 살레시오 카리스마가 견고하게 피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