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의 제266대 교황 재위 기간(2013년 3월 13일 ~ 2025년 4월 21)은 여정, 개혁, 문헌, 교회 구조 개편, 평화, 가난한 이들과 이민자들을 위한 노력, 혁신과 형제애의 전망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예언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맡겨드리며, 그분의 재위 기간 동안을 간단하게 정리한 글을 소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많은 분야에서 첫 번째였다. 첫 번째 예수회 출신 교황, 첫 번째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황, 첫 번째 숫자 없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한 교황, 전임자가 생존한 상태에서 선출된 첫 번째 교황, 교황궁 밖에서 거주한 첫 번째 교황, 교황이 방문한 적이 없는 지역(이라크에서 코르시카까지)을 방문한 첫 번째 교황, 이슬람의 주요 지도자와 형제애 선언을 체결한 첫 번째 교황입니다. 또한 교회를 다스리기 위해 추기경 평의회(Consiglio dei Cardinali)를 설치한 첫 번째 교황, 교황청에 여성과 평신도에게 책임 있는 직책을 부여한 첫 번째 교황, 교황청의 개혁을 위한 시노드를 개최한 첫 번째 교황, 성직자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교황의 비밀 유지 의무를 폐지한 첫 번째 교황, 교리문답에서 사형 제도를 삭제한 첫 번째 교황이다. 또한, 세계에서 '하나의' 전쟁이 아닌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이 대륙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시기에 교회를 이끌었다. 전쟁은 '항상 패배'라고 그는 300회 이상의 호소문에서 반복했으며,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폭력이 확산된 후 마지막 공개 발언에서도 목소리가 약해질 때까지 이를 외쳤다.
과정의 교황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은 아마도 자신의 교황직이 '첫 번째'라는 개념과 연관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12년 임기는 목표를 달성하거나 기록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시작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진행 중인 과정, 완료된 과정, 또는 먼 미래의 과정, 심지어 그의 후임자가 성 베드로의 보좌에 앉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과정들을 도입했다. 항상 만남, 교류, 공동체 정신의 지평 속에서 - 교황직의 로드맵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 기록된 대로 - 사회와 교회에 '새로운 역동성'을 창출하는 행동들을 몸소 실천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전체 신앙 공동체의 영적 여정을 동반하는 과정의 앞자리를 실천했다. '양 냄새를 풍기는 목자'로서 그의 삶은 서민적인 언어로 감동적인 강론을 설파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삶 자체가 강론이 되는 가난한 종의 삶을 살았다.
세상의 끝에서
“주교와 백성으로서 이 길을 시작합시다."는 말은 2013년 3월 13일 밤 늦게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후 한 달 만에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에게 그가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으로서 축복의 발코니에서 처음 발한 말이었다. 동료 추기경들로부터 선출된 76세의 신임 교황은 그곳에 모인 군중에게 “세상의 끝에서” 선택된 자로서 축복을 청했다. 그는 군중과 함께 성모송을 외우려 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교로서 콘클라베를 마치면 바로 가방을 들고 자기 교구로 돌아가려 할 만큼, 로마를 자주 방문하지 않아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해 어눌하게 이어갔다. 다음 날, 프란치스코는 차를 타고 산타 안나 성당과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방문해 군중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나누며, 자신의 교황직을 보호하는 '로마 시민의 보호자'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바로 이 대성당에 프란치스코 자신이 묻히기를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민중 속의 목자
아르헨티나 사목 시절부터 이어진 서민과 친밀함은 교황이 된 이후도 모든 해에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바티칸 직원들을 그들의 사무실로 방문하는 것, 2016년 희년 기간에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의 장소에서 열린 '자비의 금요일' 행사, 성목요일 미사를 감옥, 요양원, 수용소에서 거행하는 것, 로마 교외의 본당을 방문하는 긴 순회, 예상치 못한 방문과 전화 통화 등을 통해, 그리고 모든 사도적 여행에서 이를 보여주었다. 2013년 베네딕토 교황으로부터 물려받은 첫 번째 브라질 방문 때(리오데자네이로 세계청년대회) 교황 차량이 군중 속에 막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던 장면 등 기억되는 것이 많다.
이라크를 방문한 첫 교황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의 국제 순방은 47회에 달하며, 행사, 당국자의 초청, 수행해야 할 과업, 등등 역시, 그가 이라크 귀환 비행기에서 밝힌 '내면의 움직임'에 따라 진행되었다. 2021년 3월 바그다드, 우르, 에르빌, 모술, 카라코시에서 3일을 보냈다. 테러의 상처가 여전히 뚜렷한 땅과 마을들, 벽에 묻은 피와 피난민들의 텐트가 길가에 늘어선 곳에서, 코로나19 팬데믹과 전반적인 안전 우려 속에서 진행된 감동적인 방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건강과 테러 위험으로 인해 반대했던 여행이었지만, 프란치스코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고 싶어 했다. 프란치스코는 이 여행을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고 항상 회고했다. 아브라함의 땅을 밟은 첫 교황으로서, 요한 바오로 2세가 가지 못했던 곳에서 시아파 지도자 알-시스타니와 회담을 가졌기 때문이다.
방기(Bangui)의 희년문과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긴 여행
좋은 고집이 그를 이라크로 이끌었듯이 2015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 방기, 내전으로 인해 방문 당시 거리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던 곳으로 그를 이끌었던 것도 같은 고집이었다. “낙하산으로 뛰어내리더라도 가겠다.”고 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 성문을 감동적인 방식으로 아프리카에서 열었다. 이 의식은 로마가 아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에서 열린 희년식의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었다. 87세의 나이로 2024년 9월에 교황 재위 기간 중 가장 긴 여행을 결심한 것도 좋은 고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15일간의 여정이 그것이다. 두 대륙, 네 개의 시간대, 항공기로 32,814km를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네 개의 서로 다른 세계는 각각 교황의 가르침의 핵심 주제를 상징한다: 형제애와 종교 간 대화, 변방과 기후 위기, 화해와 신앙, 부와 발전이 가난을 위해 봉사하는 것.
람페두사에서 주바까지
사도적 여행과 사목 방문을 되짚어볼 때, 로마를 떠나 첫 번째로 방문한 작은 섬 람페두사도 잊을 수 없다. 이 섬은 대규모 이주민 비극(수많은 이주민들이 지중해에 빠져 숨진)의 현장이었으며, 지중해에 던져진 꽃 화환은 '하늘의 묘지'를 상징했다. 레즈보(2016년과 2021년)의 난민과 피난민들이 머무는 컨테이너와 텐트에서 반복된 고발도 마찬가지이다.
교황 재위 기간의 역사에서 성지 순례(2014년); 스웨덴 룬드(2016년)에서 루터교 개혁 500주년 기념식; 캐나다(2022년)에서 지난 시절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이 저지른 학대에 대해 원주민들에게 용서를 구한 방문도 포함된다. 또한 콩고민주공화국과 남수단(2023)을 방문했으며, 후자는 영국 성공회 총주교 저스틴 웰비와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 모더레이터 이안 그린실드와 함께 방문해,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에큐메니컬 정신을 강조했다. 2019년 산타 마르타에서 이틀간의 피정을 가진 남수단 지도자들에게도 이 상처를 치유하도록 노력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 피정은 그들의 발에 침구하는 충격적인 제스처로 마무리되었다.
또한 쿠바와 미국(2015) 방문은 두 국가 간 외교 관계 수립을 상징하는 여행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역사적 사건을 위해 수개월간 노력했으며, 바락 오바마와 라울 카스트로에게 편지를 보내 '새로운 단계'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오바마는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교황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바나에서는 모스크바 정교회 총대주교 키릴과의 회담과 '자비의 에큐메니즘'을 실천하기 위한 공동 선언문 서명식이 열렸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형제애 넘치는 인류 사랑을 위해 노력하자는 약속이었다. 이 약속은 몇 년 후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며 안타깝게도 실현되지 못했고, 일부는 무시당했다.
아부다비에서 '인간 형제애 문서' 서명
여행 중에서는 아부다비(2019)와 대 이맘 알-타예브와 함께 서명한 인류의 형제애에 관한 문서도 소중하게 기억된다. 이 문서는 산타 마르타에서 시작된 관계 개선을 마무리 짓는 것으로, 이 문서는 즉시 이슬람-가톨릭 대화의 초석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여러 회헌에도 반영되었다.
방대한 교황 문헌
이 여행들에서 쌓인 경험, 대화, 행동들은 교황 재위 기간의 문서들에 반영되었다. 교황 회칙 네 권: 첫 번째, 신앙의 빛(Lumen Fidei)은 신앙을 주제로 베네딕토 16세와 공동으로 작성했다. 두 번째,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는 기후 변화와 착취로 인해 고통을 겪는 '공동의 집'을 위해 '방향 전환'을 촉구하는 외침으로, 빈곤의 근절과 지구 자원의 공정한 접근을 위한 행동을 자극한다. 세 번째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은 교황 가르침의 핵심으로, 아부다비 문서의 결실이며, 새로운 전쟁의 폭발 전에 형제애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임을 예언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는 예수님의 마음 속 인간과 신성한 사랑에 대한 전통과 현대성을 되짚으며, 마음을 잃은 듯한 세계에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도적 권고와 자의교서
사도적 권고는 7건으로, 이미 언급된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부터 테레사 성녀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 사랑으로 이끄는 신뢰(C'est la confiance)까지이다. 그 사이에는 시노드 후속 사도적 권고인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가족 시노드),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Christus Vivit: 청년 시노드), 사랑하는 아마존(Querida Amazonia: 파나마존 지역 시노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 현대 세계에서 성덕에로의 부르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Laudate Deum: Laudato si'의 후속 문서로, '파괴의 임계점' 전에 어머니 지구에 대한 반응을 촉구하는 호소) 등이 있다.
약 60개의 교황 자의교서(Motu Proprio)는 로마 교황청의 구조 재편, 로마 교구 관할 조정, 교회법 및 바티칸 사법 체계 개정, 학대 방지 위해 더 엄격한 규정과 절차 제정을 목적으로 발간되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Vos estis lux mundi)는 2019년 2월 바티칸에서 열린 아동보호회의의 결과, 지침, 권고 사항을 반영한 문서다. 이 회의는 성직자의 소아성애와 성적 학대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학대에 맞서 싸우는 작업의 정점을 이룬 행사였으며, 교회가 진실과 투명성으로 회개의 자세로 행동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 문서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추행과 폭력을 신고하는 새로운 절차를 수립하고 '책임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즉, 주교와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교황청 개혁
교황청과 교회 개혁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위 기간 중 변함없는 과제였다. 교황은 콘클라베 전 추기경회의에서 장차 새 교황에게 로마 교황청, 특히 수년 동안 스캔들의 중심에 있었던 바티칸 재정의 구조 조정에 대한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 교황은 즉시 추기경들로 구성된 'C9'(이후 멤버 교체로 C6, C8로 변경됨)이라는 소규모 '추기경 평의회'를 구성해 보편 교회 통치에 협력하고 교황청 개혁 추진을 돕도록 했다. 부서의 통합과 기타 직책 및 조직의 변경은 진행 중인 작업의 신호였다. 마지막 단계는 수년 동안 기다려온 교황령 복음설교(Praedicate evangelium)는 2022년에 예고나 서문 없이 공포되어 중요한 새로운 사항을 도입한 것이었다.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교황이 직접 관장하는 새로운 복음화 부서의 설립과 평신도의 '통치와 책임의 역할'에의 참여이다.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첫 번째 평신도 장관으로 파올로 루피니가 공보부 장관으로, 첫 번째 여성 장관으로 시몬나 브람빌라 수녀가 수도회부 장관으로, 그리고 바티칸 시국 첫 여성 집정관으로 라파엘라 페트리니 수녀가 임명되었다.
여성
여성들은 베르골리오 교황 치세 기간의 또 다른 주요 흐름이다. 그는 다른 교황들보다 여성들에게 책임 있는 역할을 맡겼으며, 여성 부제 연구를 위한 두 개의 위원회를 설립했고, 여성의 '재능'과 교회의 모성적 차원(교회는 '여성'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여성을 지칭하는 정관사 la가 붙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노드에서 추기경과 주교들과 함께 수녀들, 선교사들, 교수들, 전문가들, 신학자 등 여성들이 테이블에 앉았고 처음으로 투표권 갖고 참여했다.
“모두, 모두, 모두”
프란치스코가 보여준 많은 것 중 하나는 개방성이다. 개방이지만 단절이나 급진적인 변화가 아니다. 일부에게는 너무 빠르다고, 다른 일부에게는 너무 신중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사실 이 역시 과정이다. 이혼 후 재혼한 이들에게 성사 허용은 성체성사를 '죄인들을 위한 약'으로 보는 관점에서 이루어졌으며, '완벽한 이들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회 안에는 “모두, 모두,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기 때문이기에 LGBTQ(성소수자) 사람들을 환영하며 사목적 친밀감을 제안하는 것,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와 종교의 대표자들과의 대화를 지속하는 것, 수세기 동안의 편견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피의 에큐메니즘”을 바탕으로 한 것, 중국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와 재개를 반복하며 열린 대화의 창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모든 치세 동안 방문을 원해 온 '고귀한 백성'과의 관계이다. 이 소망은 청년 시절의 선교적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선교정신과 시노달리티
선교는 또 다른 핵심 주제다. 오히려 '선교 정신'은 문헌과 강론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주제이며, '시노달리티'와 함께 지난 12년간 자주 언급된 용어이다. 교황은 '시노달리티'에 시노드 두 회기(2023년과 2024년)를 전념했으며, 시노드의 구조와 운영을 혁신하고, 시노드 여정을 '아래로부터' 시작할 필요성을 직감해, 작업 후 교리적, 신학적, 사목적 주제를 심화하기 위해 10개의 연구 그룹을 설립했다.
가난한 이들과 이민자들
이 교황 재위 기간은 교회, 정치, 사회의 전체 현실을 요약한 '버림의 문화', '무관심의 세계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나가는 교회', '양의 냄새를 지닌 목자들', '연대의 글로벌 윤리' 등과 같은 명제들로 기억될 것이다. 2017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날을 제정하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은 계속하도록 했다. 이 날은 항상 교황이 바오로6세홀에서 노숙자와 홈리스와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민자에 대한 가르침은 '받아들이기, 보호하기, 발전시키기, 통합하기'라는 네 가지 동사로 표현된 프로그램이 담긴 지침으로, «이 세기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유지될 것이다. 또한 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찢어놓는 분쟁에 대한 해결책으로 '존중받는 타협'을 모색하라는 초청도 계속될 것이다.
평화 위한 노력
최근 몇 년간 끊이지 않은 갈등들은, 폭력 피해자들에게 보낸 호소문과 서한을 통해 규탄되었으며, 비디오 통화 – 특히 가자 본당과 매일 통화 – 또는 추기경 사절단 파견과 필수품 지원으로 완화하려 노력했다. “전쟁 시기의 교황이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는 교황 선출 10주년을 맞아 바티칸 언론과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팟캐스트에서 고백했다.
평화는 항상 그의 목표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리아,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전 세계 모든 신자들이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2022년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성심에 봉헌했으며, 2014년 6월 8일 바티칸 정원에서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와 팔레스타인 대통령 마흐무드 아바스와 함께 올리브 나무를 심는 역사적인 행사를 주최했다. 평화를 위해 교황은 비공식적인 행동을 취했다. 예를 들어, 키예프에 첫 번째 폭탄이 투하된 다음 날, 교황청 주재 러시아 대사 알렉산더 아브데예프의 대사관 사무실로 차를 타고 가서 푸틴 대통령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중재 가능성을 확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차례 국가 원수들과 정부 수반들을 질책하고, 민족들 사이에 흘린 눈물에 대해 하느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할 전쟁의 나라들을 경고했으며, 번성하는 무기 시장을 비난하고 무기 구입 비용을 기아 퇴치를 위한 세계 기금으로 사용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다리를 건설하고 장벽을 세우지 말라고 촉구했으며, 군사 전략보다 공동의 이익을 우선시하라고 독려했다. 이 노력이 때로는 잘못 해석되고 비판받기도 했다.
혁신
지난 몇 년 동안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에 대한 비판이 없지는 않았다. 교황은 항상 유머로 반대 세력과 역풍에 대응했으며, 그는 유머가 “하느님의 은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지고 놀라움을 안겼으며, 금기를 깨고 프로토콜과 오래된 관습을 뒤흔들거나, 교황직에 파격적인 다른 복장, 거주지, 이례적인 제스처와 공간 활용, 독특한 사목 스타일로 재구성해 일부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주기도 했다. 또는 웹 방송과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9개 언어로 운영되는 X(트위터 계정) @Pontifex를 통해 긴급하고 광범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채널로 활용했다.
어려운 시기들과 건강 문제
이처럼 밀도 높은 시기 동안, 휴식 시간은 매우 드물었고(전통적인 교황의 휴가인 카스텔 간돌포 방문도 폐지되었다) 어려운 순간들이 이어졌다. 법적 소송(특히 교황청 자금 관리와 관련된 장기적이고 복잡한 소송), 바티칸 유출 사건, 학대와 부패 스캔들, '고귀함과 인간성'이 결여됐다고 평가한 책들의 출판 등이 그 예다. 건강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 2021년과 2023년 제멜리 병원에서 받은 수술, 2023과 2025년 같은 병원에 양측성 폐렴으로 입원, 감기, 독감, 무릎 통증으로 인해 지난 3년간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최근 몇 주 동안 병원에서 퇴원 후 성 베드로 광장, 바티칸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등에서 깜짝 방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존재감을 보여주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통계 자료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발한 활동과 행사 참석은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 이를 증명하는 통계 자료는 다음과 같다: 일반 알현 500회 이상, 163명의 새로운 추기경을 임명하는 10회의 추기경 회의(교회에 보편성을 되찾아준 행사); 900명 이상의 새 성인 시성식(전임 교황 3명 포함: 요한 23세, 요한 바오로 2세, 바오로 6세); '특별한 해'로, 축성생활 해(2015-2016), 성 요셉의 해(2020–2021), 가족의 해(2021-2022); 세계 청년대회 4회(리우데자네이루, 크라쿠프, 파나마, 리스본), 두 번의 희년(2016년 자비의 특별 희년과 2025년 진행 중인 일반 희년 - 주제: '희망의 순례자') 등을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의 교황 강복(Statio Orbis)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교황은 인터뷰, 책, 편지, 자서전 등을 통해 대중과의 가까움을 추구한 교황이었다. 이 교황은 아마도 수많은 말과 글보다 팬데믹의 시간 속에 멈춰 선 광장에서, 혼자서 절뚝거리며 비를 맞고 있는 그의 모습으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될 것이다. 주변은 침묵에 휩싸여 있고, 유일한 배경 소리는 구급차 소리뿐이었다. 2020년 3월 27일의 로마와 온 세상에 내리는 교황 강복(Statio Orbis)를 말한다. 세계는 집 안에 갇혀 화면으로 한 노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분은 일상과 습관을 뒤집은 비극의 무게를 홀로 어깨에 지고 있는 듯했다. 인류는 고통스러웠지만 교황은 희망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두 취약하고 방향을 잃었지만, 동시에 함께 노를 젓도록 부름받은 존재입니다.”라며 감동적인 장면으로 형제애의 실천을 전 세계에 호소했다.
주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그에게 당신 나라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